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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고
2년차 페이퍼를 날리듯이 만들어 제출하고 필드 시험대신 제출해야 하는 페이퍼를 제출하고 보니 어느덧 한 학년이 지났다. 도대체 난 이 긴 기간동안 무엇을 한걸까? 도대체 알맹이 없는 헤메임을 하면서 지나간 일년을 돌이켜보니 자각이랄까, 혹은 현실이랄까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된다.
괜한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살다보니 그 무엇도 하게 되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공부를 즐긴다라. 말도 안되는 소리지. 이제 알게되었다. 이게 밥벌이가 된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상황인가를. 결국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잃게 되겠지. 젊음도, 열정도, 삶에 대한 의지도. 그러면서 직업으로 공부를 하고,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연구를 읽고 무언가를 거기서 고쳐내고 논쟁하고. 삶의 어떤 부분도 바꿀 수 없으면서 입으로는 그런 것들을 외쳐대는 이율배반적인 삶이 되가고 있지 않나? 서로 얼마나 아는가로 서로를 가치매기고, 평가하고, 남들의 시선에 민감해지고. 경쟁이란 것들이 과연 얼마나 삶을 발전시킬까 하는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미 그 부작용이 원래 가져오리라 기대했던 효과를 넘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직업인의 세계에 질려버렸다. 재미가 없어. 사실은, 실은, 그 누구도 여기서 진짜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공부란 무엇일까? 앎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고, 그런 앎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공부 아닌가? 결국, 그 앎이 행동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공부라고 할 수 없어. 이 바닥은 공부가 중심이 되고 그것에 따라 자신의 삶이 바뀌어 나가는 원래의 과정을 역순환 하고 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인센티브만을 중심에 두고 공부하지. 그런 자신의 삶의 인센티브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어떤 이유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명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하고, 그것들을 가다듬고,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자신이 부합하도록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어찌 보면 이런 건조하다 못해 추하기까지도 한 것들이 공부라고, 혹은 학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재앙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어. 그저, 현재의 삶을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그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고 안분지족을 누릴 것에만 관심이 있지. 기천년전의 조상들이 보기에도 그야말로 기가 찬 노릇이지. 장사치들이 자신을 학자라고 말하고 다닌다니.
이렇게 되버린 바에야, 이처럼 다른 마음 가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그냥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누가 나를 어떻게 여기든. 결국, 내 삶은, 내가 하는 공부의 목적 자체가 좋은 직장을 잡고 영달을 누리는 삶이 애초에 아니라면, 그것들을 통해 설득당하지 않을 삶이라면 그것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여긴, 학문의 전당이 아니야.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세계에서의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던 간에 여기까지 치닫게 된 비극의 중심에는 미약한 역사라는, 미약한 역사 의식이라는 그 보잘것 없는 뿌리 얕음이 자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본질을 잃은 학문이라. 인간의 삶을 잃어버린 학문이라. 공부하는 공부인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는 공부라. 궁극을 향하지 않는 공부라. 그것이 어떻게 공부란 말이냐. 그건, 그저 현상에 몰두하는 어린아이의 삶과 다를 바가 없지.
결국, 나는 여기서도 내쳐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정말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이들과 섞여있을 때는 적어도 공부라는 것을 택한 입장이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 삶의 방식도 다르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그것을 정당화하면서. 그런데, 결국, 공부라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내 삶이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왜, 같은 공부를 하면서도 그들이 공부하는 목적과 내가 공부하는 목적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차라리, 스피노자처럼 렌즈를 깎으면서 하던 공부가 차라리 원래의 공부에 가깝다. 한 표주박의 물과 한 그릇의 쌀알을 씹으며 하던 안회의 공부가 차라리 내가 원하던 공부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