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2 아이러니 (8)
  2. 2009/02/05 망할 (2)
  3. 2009/02/04 합리적 판단

아이러니

손가락 2009/02/12 01:38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하다보니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를 못 하는 것 같은 요즘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 '이상한 글'을 올리지 말라는 알 수 없는 통신검열이 들어와 도대체 블로그를 써야 할 지도 조금은 궁금해 하던 차이다. 나름 올해 들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들자면 이런 식의 몸사림이랄까, 하여간 이젠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무치(無治 - 아우름이 없음)라고 해야 할 지 무치(無恥 - 부끄러움이 없음)라고 해야 할 지 모를 정국에 어떤 말을 섞는 것 조차도 그저 상스러운 말로 들릴까 그것이 조심스러울 따름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후임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편리한' 도구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떤 반성이나 자책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한 뻔뻔스러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망설임이나 재고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음으로 인해 어떤 영역을 선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구에 오르내리는 '사이코패스'라는 것은 그러한 뻔뻔함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라 보이는데 문제는 그러한 사이코패스가 우리 앞에 매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양분화시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

굳이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녀자 연쇄 납치살해범'의 태도를 들 수 있겠는데, 그가 납치 및 살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서 시작해 언론을 통해 포장되고 타자화를 통해 '사이코패스'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1%의 인물들을 가려내자는 외침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나 전형적인 타자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즉, 개별적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이든, 유전적이든-  병리학적 문제로서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사회와 분리할 수 있는 실체로 만드는, 그리고 끝내는 그러한 실체를 사이코패스 테스트 등의 방법을 통해 구별해내어 '정상인'과 분리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이 사회를 '정상인'과 '사이코패스'의 양분된 구조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흐름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익히 접해왔던 통제 사회로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의 원류는 바로 그러한 '정상인'들에게서 비롯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을 '정상인'이라는 다수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타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타집단의 권리와 이익의 착취를 정당화하려는 대중적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중을 선동하고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고자 애쓰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을 사용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던 '타인'들을 살해하고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적 결정권을 통해 타인의 이익을 강탈하고도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대중이 그렇게 찾아 그들과 분리하고자 하는 사이코패스들은 바로 그들 안에서 누구보다도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그러한 사이코패스의 무리에 끼지못함을 앙앙불락하며 몸부림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여러 명을 죽이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수십명을 죽이면 추앙받는 자가 되며 수백,수천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이는 곧 인간의 이타성은 폭력의 제어라는 사회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일게이다. 제어할 수 없는 폭력은 곧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이윽고는 제어할 수 없는 복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라는 것은 그러한 제어의 끈을 모두에게 열어준 사회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그 끈을 잡고 힘을 주려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소를 잡으려고 끌고 갈 때 어떻게 하는지 본 적이 있는가?  말을 듣지 않는 소의 사지에 올가미를 씌워 사방에서 잡아당겨 힘을 빼면서 고삐를 쥔 사람이 방향을 이끈다. 어느 한 쪽이라도 힘을 빼면 다른 쪽으로 성난 소가 달려든다. 현대 중앙정부라는 거대한 힘을 가진 소를 잡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 끈을 잡고 있어야만 한다. 자신만이 편하게 끈을 놓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끈을 놓고 있다. 
2009/02/12 01:38 2009/02/1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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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분류없음 2009/02/05 19:30
윈도우 익스플로어에 문제가 생긴건 지 여기에 몇 달째 그림을 못올리고 있다.

파일 업로드를 하려면 불러오기 창이 떠야하는데 왜 안 뜰까?

팝업 차단을 한 것도 아닌데.

알 수 없단 말이지.

 
2009/02/05 19:30 2009/02/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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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판단

손가락 2009/02/04 21:36
 흔하게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 중에 '합리'라는 단어가 있다. 물론 경제학에서야 그 합리성을 가지고 온갖 가정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합리성에는 공통된 함의가 있는 듯 하다. 말하자면 '정상적임'을 가정하는 것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합리'라는 것은 두 가지의 겹치기도 하지만 상충 가능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즉, '이익(利)에 부합(合)하는가' 혹은 '이치(理)에 부합하는가' 라는 두 가지 의미들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전자에 가까운 것인 반면에 일반적인 의미의 - 위에서 언급한 '정상적인' - 합리성이라는 후자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적이 상충할 때 선택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에는 전자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과하게 경제학적 가정에 호도된 본인의 가정이다) 그러나 요즘 웅크리고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두 가지를 섞거나 혹은 어느 하나로 다른 것을 가려 무엇이 실체인지를 헛갈리게 하려는 행태가 눈에 띈다. 물론 이전에도 그것은 빈번하게 사용되던 책략이자 술수였지만 무엇이든지간에 참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선거에서는 어떤 사람을 뽑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게 후자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전자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옳은 것이 대안적 선택지인 선택에서 그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것은 옳은 것과는 상관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간 옳은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을 선택한 마당에서 과연 그 선택이 '합리(合利)'적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상황 1.  .....정부가 최근 미래 성장 및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대책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는 13일 신재생에너지와 로봇 등 17개 미래 첨단 분야에 97조여원을 투자, 10년간 352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내용의 '신(新)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09.1.14. 조선일보 정치면)

상황 2.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과천 정부청사를 전격 방문해....온라인 게임은 우리가 잘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크리에이티브한(창의적인) 제품은 소니, 닌텐도가 앞서가는 게 사실”이라며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국산화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

물론 합리(合理)의 의미로 선택을 하셨다면 그 분은 열외.
2009/02/04 21:36 2009/02/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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