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망할. 드디어 다 끝내고 나왔다. 전역한지 열흘이 넘어서야 정신을 챙기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자유의 기쁨이란 정말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간 별 탈 없이 전역해서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고 영어수험을 준비하고 개인적인 논문도 서서히 시작하고 있다.
다 좋은데 소위말하는 학업계획서라는 것을 근 8년만에 다시 쓰려다보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되었는지 등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그다지 거창한 목표나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된다. 지금 하고있는 공부가 재미있고 결과적으로는 더 이성적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는 정도.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운과 기회가 공부를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주었고 그 가능성을 기반으로 공부로 평생 벌어먹고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남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는 남들과 이야기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다. 차라리 글을 쓰는게 낫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남들을 가르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최소 6년의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그리고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한 것을 보면서 나도 문득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아쉬움과 섭섭함,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 가지던 두려움은 사라진 것 같다. 가끔은 이것이 전역자의 위력인가 하는 느낌마저도 받는다. 내가 군대에서 겪은 많은 것들은 겪지 않았음이 더 나았을 것들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무덤덤해진 것,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군대가 아니라 군대에 있던 연령대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홀가분하다. 그야말로 많은 것을 털어버린 것만 같아서. 남들도 다 하는 군생활이라지만 말이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점심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서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