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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22 보험왕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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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2/12 아이러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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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니?

손가락 2010/01/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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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말고 들어~ 연봉 2억에 안되겠니?

우리나라 야구는 NPB 2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사실 현대 스포츠는 전형적인 상업오락물의 하나이기에 자본의 논리로 모두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미국, 일본의 자본력에 대항해 한국 리그의 자존심, 혹은 독립된 리그로서의 자존심 등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의 하부 리그에 불과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야구시장과 유사힌 계급관계(?)를 갖는 유럽 축구시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네덜란드의 에리디비지에(네덜란드 리그)는 유럽 내의 빅리그(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에 유망주를 공급하는 전형적인 하위 리그의 형태를 하고있다. 인구가 남한 인구의 반절이 채 되지않는 네덜란드이기에 많은 축구인구를 갖는 대형 시장이 갖는 자본에 자국 리그의 유망주를 넘겨주는 것은 네덜란드에서는 (그리고 여타 군소리그에서는) 당연하다시피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K 리그에서 뛰던 이청용 선수가 시즌이 채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잉글랜드 시즌 개막에 맞추어 이적한 사실에 대해서는 분개는 커녕 환호와 축하를 보내면서 어째서 한신의 김광현에 대한 지목에 대해서는 분개와 야유를 보내는 것일까? 이는 사실 한국 리그의 영세성이나 협소함의 문제이기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례로 일본 J리그로 진출한 이근호에 대한 세간의 조롱을 보면 그러한 예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일본의 좋은 스포츠환경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자존심과 연봉액이라는 단편적인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만약 한국 프로축구 구단의 한 선수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이나 세리아의 팔레르모 등의 구단이 자유이적이 가능해지는 대로 영입하겠다고 한다면 모두가 지금처럼 분개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의 영세성이라는 표면적인 상황을 보기에 앞서 프로야구의 탄생이라는 정치적 맥락을 논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있듯이 전두환의 3S 정책의 일환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즉,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매일 계속되는' 여가거리에 돌리게 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의 일환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의 시초이다. 그러한 태생이 말해주듯 한국 야구위원회의 총재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들이 맡는 것이 관례이다시피 하였다. 얼마 전에 사망한 두산 그룹의 전 회장인 박용오씨(1998년 취임)가 최초의 '민간인' 총재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선임 총재였던 정대철의 구속으로 인해 총재직의 수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가능했던 총재였다는 말도 있긴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정치권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선 기업들의 홍보전략의 일환으로서의 프로구단은 사실 기업 홍보부서의 부대 조직에 불과했을 터이다. 그러한 맥락이기에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야구관람이 가능했던 것이었고, 한국 시리즈가 열리던 92년 광주에서 그렇게 많은 부라보 콘들이 관중석 위를 날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형편에서 각 독립이 (현재의 히어로즈처럼) 불가능한 야구 구단들의 상황은 팀 성적이 팀 유지의 절대적 근거가 되는 일본과 미국 리그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례로 도미니카나 멕시코처럼 독립리그의 형태로 유지되는 리그들은 '심지어는' 한국 프로야구의 팜이 되기도 한다. (구톰슨과 로페즈 역시 그 곳에서 긁어낸 보석임을 잊지말기를) 그런 맥락일진데, 각 기업들에게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선투자를 통해 흑자구단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라는 것은 괜한 부스럼을 만드는 행동에 다름없다. 일단 각 기업이 구단을 가지고 일정한 액수를 '배당'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홍보효과를 갖고 있는데 굳이 무리한 투자를 통해 공격경영을 할 인센티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약 생각한 것 만큼 큰 홍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그러면 구단주는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문책당할 것이 자명한데 그러한 불분명한 투자에 선뜻 나설만큼 계산에 둔한 기업은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 10대 그룹에 든다고 손꼽히는 기업일진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일정한 배당금을 내주면 안정적 홍보 효과를 주는 홍보수단을 쉽게 다른 이에게 내줄 리도 만무하다. 둘을 운영하기는 힘들지만(귀찮지만) 하나는 확실히 갖는 것이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큰 힘이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독립한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독립한 구단의 고충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한 구단이 겪고 있지 않은가? 불과 8개의 구단 사이에서도 히어로즈는 팜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상당 부분 맞아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야구를 사랑하고 기업들에 왜 공격적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소위 말하는 야구팬들의 의식 수준은 딱 그 정도이다.

한국의 정치개혁이 왜 이렇게 더디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다른 이의 말이 생각나 인용해본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정치적 수준만큼만을 반영한다고. 4대 강을 삽질해대고 원전 수주했다고 희희낙락해대는 정권의 이면에는 딱 그 정도인 국민이 있다는 말이다. 국가의 수준이 바뀌길 원하는가?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적어도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고 참여해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20세 이래로 군대에 있을 때조차 모든 선거에 참여해왔다.)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의 팜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가? 내일 당장부터라도 야구장을 찾아보아라. (특별한 응원구단이 없다만 이왕이면 히어로즈로)

추신 : 난 절대 히어로즈의 팬이 아니다. 한화의 팬이다. 올해는 두산전 승률 좀 높여보자. 제발.

2010/01/15 01:02 2010/01/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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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전역기

손가락 2009/05/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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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망할. 드디어 다 끝내고 나왔다. 전역한지 열흘이 넘어서야 정신을 챙기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자유의 기쁨이란 정말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간 별 탈 없이 전역해서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고 영어수험을 준비하고 개인적인 논문도 서서히 시작하고 있다.

다 좋은데 소위말하는 학업계획서라는 것을 근 8년만에 다시 쓰려다보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되었는지 등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그다지 거창한 목표나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된다. 지금 하고있는 공부가 재미있고 결과적으로는 더 이성적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는 정도.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운과 기회가 공부를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주었고 그 가능성을 기반으로 공부로 평생 벌어먹고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남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는 남들과 이야기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다. 차라리 글을 쓰는게 낫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남들을 가르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최소 6년의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그리고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한 것을 보면서 나도 문득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아쉬움과 섭섭함,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 가지던 두려움은 사라진 것 같다. 가끔은 이것이 전역자의 위력인가 하는 느낌마저도 받는다. 내가 군대에서 겪은 많은 것들은 겪지 않았음이 더 나았을 것들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무덤덤해진 것,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군대가 아니라 군대에 있던 연령대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홀가분하다. 그야말로 많은 것을 털어버린 것만 같아서. 남들도 다 하는 군생활이라지만 말이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점심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서 기쁘다.
2009/05/20 00:57 2009/05/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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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후에

손가락 2009/05/06 01:01
주의깊게 살피지 않아도 요즘에는 참 잡다한 사건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삼촌들이 말하던 '5공'시절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맛 볼 수 있다는 희대의 대사건들의 발생이다. 눈가리고 아웅식의 국민기만, 시위 폭력진압, 긴급조치식 법률 집행. 이야말로 돈 주고도 맛 볼수 없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경험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역사책에도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세력과 비슷한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삼국시대에는 대조영과 고구려를 등지고 당에 붙어 고구려를 멸망시킨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과 대가일족, 고려시대에는 공민왕과 신돈, (망해가던) 원에 붙어있던 기씨 일족과 권문세족이 있었다. 구한말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사들과 그 유명한 을사오적이 있었다. 다시금 한 움큼의 인간들이 이 '땅'을 대물림하고 많은 이들에게 삶을 구걸하게 만들고 있다. 100년 후에. 누가 어떤 페이지에 어떤 인간으로 기록될까?

그런데 당신들은 아닌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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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니 생각이고~
2009/05/06 01:01 2009/05/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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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왕의 비극

손가락 2009/04/2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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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요즘 바쁘다. 직장다니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든지 시원치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쁘고 취업철의 중생들은 '스펙'만들기에 급급하다. 며칠전에 텔레비전에서 <시사매거진 2580>(이하 <2580>)을 보았는데 거기서 20대 보험왕이라고 85년생 되시는 분을 인터뷰했다. 이야기를 들어 본 즉슨 요점은

'불황이라고 지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지말고 뭐라도 해라'

였다.  들어보면 요즘 다들 쉽고 편하고 돈많이 버는 원하는 직장 얻으려고 하는데 인터뷰의 주인공은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요점을 맞추다보니 인턴을 하면서 취업을 하게되었고 일을 즐기다보니 보험왕까지 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왜 우리가 이런 말을 텔레비전에서 들어야 하는 상황에 왔을까? '100만 백수 취업난'같은 소리를 텔레비전에서 듣게되고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해봐라 라는 식의 취업강요를 텔레비전에서 들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학생들에게 취업을 강요하고 교육을 취업의 도구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인식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퍼진 문제인지 혹은 언론과 기업에 의해 호도된 문제인지는 여기서 밝히고 넘어가지 않겠다. 문제는 당신들이 말하는 '실용적 교육'이 작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사회화의 수단이고 직업이라는 것이 삶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임을 들어 그러한 교육의 목적이 직업을 갖는데 합당한 인간을 만드는 것과 전인적인 교양인을 만드는 것과의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님은 원론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주가 되고 무엇이 부가 되는 것인지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중이요, 누룽지 긁어먹으려고 멀쩡한 밥을 태워먹는 경우인 것이다. 대학교육이라는 것이 전문적 지식 교육을 통해 자아를 성숙시켜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졌건만 그러한 본래의 목적은 집어던지고 '직업=직장'이라는 생각의 교육을 시키고 있었으니 이제 '직장'이 모자르니 '직업'이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었다. 즉, 사회가 대학교육에 수동성을 주입시키고 남이 원하는 것만을 하도록 강요하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대학에 기부금과 찬조금을 빌미로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을 학생들에게 장착시키도록 강요한다. '토익 000점, 한자 0급, 2중 전공 필수'등 모 대학 졸업요건을 보면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가관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정도이다.  

 그런 교육을 몇 천 만원이라는 고액에 강매하고는 그와 같은 수동성에 물든 이들에게 자율성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자율성에 기반한 전문성이 아니라 수동성에 기반한 기계성을 교육하면서 이들에게 '아무데나 가서 시키는 대로 일하면 좋은날이 온다'고 하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던 말이다.
2009/04/22 00:56 2009/04/2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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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ime to rumble, baby.

손가락 2009/04/06 18:34
 근래 글이 별로 없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변명임은 자명하므로 쓸데없는 변론은 늘어놓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최근 근황이라면 거동이 불편하여 가만히 앉아서 GRE 따위에 매진하고 있었다는 것과 심심함을 참지 못하여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음악을 하려는 생각을 그만두고 있는 장비와 연습실을 매각했다는게 최근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라고 하겠다. 이젠 정말 여유란 것이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있다.

근래에 텔레비전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터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최저임금법을 잠정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온갖 리스트에 북한 - 뭔가 더 중립적인 고유명사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 이 장거리 발사체 실험을 하는 일도 있었다. 행정부 수장 - 한국에는 국가원수가 없으므로 - 이 해외순방 중에 지역 신문사에 기고했다는 논설문이 오바마 정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묘한 기사도 있고 -  오바마 마음 움직인 'MB 기고문' 조선일보 정치 4/4 - 여간 정신없는 일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야당의 한 정치인은 자신이 이전 총선에서 했던 발언을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정치적 '재기'를 시도하고 있고 야당 수뇌부는 그것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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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한국의 정치상황은 소위 말하는 지네 게임(Centipede Game)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진 츨처 : 위키피디아 - 참고) 즉, 게임의 결말은 정해져있고, 효용의 전체 양은 정해져 있지만, 자신이 교섭권을 가진 차례에 상대방에게 극단적으로 적은 (그러나>=0인) 효용을 제시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것이라도 얻는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거나 더 나으므로 그러한 교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제의를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다음 차례에는 자신이 역으로 더 많은 효용을 가질 수 있는 - 지금 상대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행태를 취할 수 있는 - 기회가 있으므로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눠가지는 효용은 초반의 효용보다 극단적으로 적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극단적인) 합리성이 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실험을 일반인들에게 한 경우이다. (참고) 일반인들은 이와 같은 극단적인 협상의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보다 적은, 그렇지만 극단적이지 않은 효용의 양을 제안한다. - 6:4 라거나
7:3 이라거나) 그리고 상대방의 경우에도 턴이 계속 바뀔 경우 효용의 절대 양이 적어진다는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으므로 그러한 제안을 적당(reasonalble)하다고 받아들인다. 즉, 자신이 가진 교섭권에 의한 절대적 우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교섭권을 이용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과연 한국의 정치인들은 모두 극단적인 합리성을 취하는 게임의 '마인드'가 몸에 밴 사람들인가. 그런데 실험에서 게임이 극단적인 합리성을 취하는 경우를 또 다른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자폐아들의 경우이다. 아아. 참고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홈페이지의 스킨 이름도 '자폐'이다. 참고 바람.
2009/04/06 18:34 2009/04/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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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손가락 2009/02/12 01:38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하다보니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를 못 하는 것 같은 요즘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 '이상한 글'을 올리지 말라는 알 수 없는 통신검열이 들어와 도대체 블로그를 써야 할 지도 조금은 궁금해 하던 차이다. 나름 올해 들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들자면 이런 식의 몸사림이랄까, 하여간 이젠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무치(無治 - 아우름이 없음)라고 해야 할 지 무치(無恥 - 부끄러움이 없음)라고 해야 할 지 모를 정국에 어떤 말을 섞는 것 조차도 그저 상스러운 말로 들릴까 그것이 조심스러울 따름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후임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편리한' 도구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떤 반성이나 자책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한 뻔뻔스러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망설임이나 재고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음으로 인해 어떤 영역을 선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구에 오르내리는 '사이코패스'라는 것은 그러한 뻔뻔함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라 보이는데 문제는 그러한 사이코패스가 우리 앞에 매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양분화시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

굳이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녀자 연쇄 납치살해범'의 태도를 들 수 있겠는데, 그가 납치 및 살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서 시작해 언론을 통해 포장되고 타자화를 통해 '사이코패스'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1%의 인물들을 가려내자는 외침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나 전형적인 타자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즉, 개별적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이든, 유전적이든-  병리학적 문제로서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사회와 분리할 수 있는 실체로 만드는, 그리고 끝내는 그러한 실체를 사이코패스 테스트 등의 방법을 통해 구별해내어 '정상인'과 분리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이 사회를 '정상인'과 '사이코패스'의 양분된 구조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흐름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익히 접해왔던 통제 사회로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의 원류는 바로 그러한 '정상인'들에게서 비롯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을 '정상인'이라는 다수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타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타집단의 권리와 이익의 착취를 정당화하려는 대중적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중을 선동하고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고자 애쓰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을 사용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던 '타인'들을 살해하고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적 결정권을 통해 타인의 이익을 강탈하고도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대중이 그렇게 찾아 그들과 분리하고자 하는 사이코패스들은 바로 그들 안에서 누구보다도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그러한 사이코패스의 무리에 끼지못함을 앙앙불락하며 몸부림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여러 명을 죽이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수십명을 죽이면 추앙받는 자가 되며 수백,수천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이는 곧 인간의 이타성은 폭력의 제어라는 사회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일게이다. 제어할 수 없는 폭력은 곧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이윽고는 제어할 수 없는 복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라는 것은 그러한 제어의 끈을 모두에게 열어준 사회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그 끈을 잡고 힘을 주려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소를 잡으려고 끌고 갈 때 어떻게 하는지 본 적이 있는가?  말을 듣지 않는 소의 사지에 올가미를 씌워 사방에서 잡아당겨 힘을 빼면서 고삐를 쥔 사람이 방향을 이끈다. 어느 한 쪽이라도 힘을 빼면 다른 쪽으로 성난 소가 달려든다. 현대 중앙정부라는 거대한 힘을 가진 소를 잡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 끈을 잡고 있어야만 한다. 자신만이 편하게 끈을 놓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끈을 놓고 있다. 
2009/02/12 01:38 2009/02/1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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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판단

손가락 2009/02/04 21:36
 흔하게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 중에 '합리'라는 단어가 있다. 물론 경제학에서야 그 합리성을 가지고 온갖 가정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합리성에는 공통된 함의가 있는 듯 하다. 말하자면 '정상적임'을 가정하는 것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합리'라는 것은 두 가지의 겹치기도 하지만 상충 가능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즉, '이익(利)에 부합(合)하는가' 혹은 '이치(理)에 부합하는가' 라는 두 가지 의미들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전자에 가까운 것인 반면에 일반적인 의미의 - 위에서 언급한 '정상적인' - 합리성이라는 후자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적이 상충할 때 선택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에는 전자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과하게 경제학적 가정에 호도된 본인의 가정이다) 그러나 요즘 웅크리고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두 가지를 섞거나 혹은 어느 하나로 다른 것을 가려 무엇이 실체인지를 헛갈리게 하려는 행태가 눈에 띈다. 물론 이전에도 그것은 빈번하게 사용되던 책략이자 술수였지만 무엇이든지간에 참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선거에서는 어떤 사람을 뽑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게 후자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전자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옳은 것이 대안적 선택지인 선택에서 그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것은 옳은 것과는 상관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간 옳은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을 선택한 마당에서 과연 그 선택이 '합리(合利)'적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상황 1.  .....정부가 최근 미래 성장 및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대책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는 13일 신재생에너지와 로봇 등 17개 미래 첨단 분야에 97조여원을 투자, 10년간 352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내용의 '신(新)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09.1.14. 조선일보 정치면)

상황 2.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과천 정부청사를 전격 방문해....온라인 게임은 우리가 잘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크리에이티브한(창의적인) 제품은 소니, 닌텐도가 앞서가는 게 사실”이라며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국산화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

물론 합리(合理)의 의미로 선택을 하셨다면 그 분은 열외.
2009/02/04 21:36 2009/02/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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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

손가락 2009/01/04 00:25
 요즘 미시 공부에서 손을 놓고 있는데다 연말연시라 정신이 없어 공부를 거의 못하고 있기에 이런저런 망상을 많이 하고 또 빈둥거림과 잠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나태한 생활을 하고있다. 게다가 이젠 병장이다보니 지나간 군대생활을 반추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의 문제가 바로 내가 어떤 경제학을 공부해야 할 지, 무엇을 지향해야 할 지에 대한 것들이다. 사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고등학교 때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가 주로 되어있었던 시기였던지라 그러한 것을 목적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런 것들은 공부라기보다는 학습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공부라는 것을 대학에 와서 자율적으로 하기 시작한 일부에 한정하고 싶다. 그런 식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때 책장 깨나 끄적거리며 읽었던 책들은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여간 그런 것들은 무언가 목적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굳이 목적이 있었다면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식의 답답함의 해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인데 말하자면 자체적인 욕구 해결과 만족감에 더 큰 방점이 찍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내가 공부하는 꼴을 보면 자꾸 무엇인가 공부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행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군대라는 곳에서 나태해짐과 싸우기위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라고 스스로 위안해보지만 사실 그런 것이 없이도 여태껏 - 적어도 입대 전에는 - 공부를 해왔고 그 자체로 만족하면서 살았는데 그런 것들을 자꾸 이름붙이고 의식적으로 의미부여를 하려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가 추잡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스스로가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할 수 없는 타율적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비참함이 든다. 여간 이런 생각들을 나는 요즘 '자기 기만'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그런 자기 기만의 부속물이 바로 이런 경제학에 대한 방향성의 탐색이다. '무언가 지향하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목적론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데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즐기지 못하는 공부의 다른 이름이고 언젠가는 지겨워질 수 밖에 없는 일들의 전조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군 생활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면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에 학부 졸업과 대학원 진학, 대학원 진학 이후 필요에 의한 공부와 학위를 위한 공부, 그리고 설사 학교에서 직업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타의에 의해 하게 될 헹위가 과연 지금 내게 다가오고 있는 것들과는 다른 궤도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 할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을 추스리지 못하는 나태함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채찍질 해야 하지만 군대라는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소위 말하는 '말년 병장'이 된 지금도 떨쳐지지가 않는다. 나 자신의 손으로 가시면류관을 들어 내 머리에 얹을 용기가 지금 당장은 생기지 않는다.

망할. 다 집어치우고 밴드나 해야하나. (아. 나는 정말 메마르고 있다.)
2009/01/04 00:25 2009/01/0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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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하례

손가락 2009/01/01 02:21
드디어 2009년, 제대의 해가 밝았는데 다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말 그대로 고난의 한 해였던 올해를 넘어서 2009년이 된다고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 안합니다.

단지 어제를 거울삼아 노력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 뿐.

내년에는 더욱 삼가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만들어내십시오.
2009/01/01 02:21 2009/01/0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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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

손가락 2008/12/27 00:14
금 주


禁 酒



STOP DRINKING



망할. 내가 신정 이후로 술을 마시면 음악을 때려친다.

2008/12/27 00:14 2008/12/2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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