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위협
시간 2009/06/02 01:23
아나킨 스카이워커라도 불러야 하나....
'시간'에 해당되는 글 27건20세기 밴드시간 2009/04/08 17:24 최근 들어 20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던 밴드들이 슬슬 복귀하고 있다. 그야말로 탕자의 귀환이라고나 할까. 한창 미국의 메탈 붐이 전성기를 맞던 시기에 절정을 누리다가 흑인음악과 팝의 대공습, 락 세계 내부의 분열(메탈코어의 강습, 뉴메탈의 분열 등)로 인해 희미한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던 밴드들. 그래서 오늘은 블로그 리뉴얼 기념으로다가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20세기 밴드 특집이외다!
![]() tingback.com/&usg=__iF_U6eFZQjeNnc1xkgq81CBMRV8=&h=475&w=655&sz=57&hl=ko&start=2&um=1&tbnid =Xi9PvCVVjgy7yM:&tbnh=100&tbnw=138&prev=/images%3Fq%3Dguns%2Bn%2Broses%26complete%3D1%26hl%3Dko%26lr%3D%26sa%3DN%26um%3D1%26newwindow%3D1 역시 지난해 엄청난 혹평(?)을 받으면서 출시되었던 <Chinese Democracy>가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나는데 사실 GN'R은 액슬이 팀을 떠나면서 Guns N' Roses라는 밴드네임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지난해의 앨범은 액슬의 개인프로젝트에 가깝다고 보는게 낫겠다. 이지 외 다른 멤버들 (슬래시, 더프, 맷)은 한참 전에 Velvet Revolver로 팀을 새로 꾸려 한참 인기를 몰았고 사실 GN'R의 오리지널 사운드라면 지난해의 앨범보다는 Velvet Revolver의 사운드에서 찾는 것이 익숙하다. 여담이지만 Velvet을 결성할 당시에 이지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이지(기타)는 원래의 멤버들로 하자고 했었단다. 문제는 보컬인데 액슬이 팀을 떠난 상태인지라 이지는 더프(베이스)에게 보컬을 시키자고 했는데 슬래시(기타)가 반대했다는. 그래서 슬래시와 개인적으로 친했고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고있던 Stone Temple Pilot의 데이브에게 보컬을 제안, 수락함으로써 팀이 탄생하게 되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이 간다고 Velvet Revolver는 데뷔(?)한 해 그래미를 타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남은 액슬의 솔로 프로젝트는 다들 아시다시피 -_-; 여간 이 쯤해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GN'R Live Guns N' Roses-Knocking on Heavens's Door (1992, Freddy Mercury Tribute) ![]() 아하. 다음은 지난 해에 그래도 빌보드에서 나름 선전을 했던 (뭐, 물론 지금도 차트에 있긴 하다만) AC/DC인데. 요즘 애들은 AC/DC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도 썩 나이가 많진 않다만) 잘 모르더라. 심지어는 지난 해에 AC/DC 앨범 나와서 듣고있으니 왠 신인이냐고, 이름이 직류교류? 이래서 한대 때려준 녀석도 있다. 사촌형이 구해준 비디오로 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바르셀로나 공연은 정말 가슴속의 꿈이랄까. 그야말로 그루브와 하드함이 최고의 맛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앵거스 영(기타)의 스쿨룩도 팀의 정체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형님들이 말씀하시는 오리지널 보컬(본 스캇) 시대의 것들은 음반으로 밖에 전하지 못했다는. 나는 브라이언(現 보컬)시대의 사람이라 가끔 영감님들에게 꼬꼬마 취급을 받기도 한다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사람인 것을 어찌하랴. 이쯤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
AC/DC - Big Gun (From the movie "Last Action Hero") ![]() 이 밴드에 대해서 알고있는 사람은 드문데, 지난 해 낸 앨범이 대박을 내고 있는 중이다. 여간. Buckcherr! (우어) 99년에 Lit Up이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었었는데 2000년 들어서 불어닥친 랩메탈의 역풍으로 된서리를 맞고 밴드가 해체까지 갔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밴드이다. 한국에 한 번 공연을 왔으면 하는데, 쉽지는 않은 바람인 것 같고 조만간 미국으로 가서 공연을 보는게 빠를 듯 하다. 여간 이 팀도 멤버를 거의 교체하다시피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마지막 하드락의 핏줄이랄까 그런 느낌을 주는 팀이다. 그만큼 최근에는 진득한 사운드를 내주는 밴드가 없다는 이야기도 하다. Fallout Boy PV에서 말하듯이 "요즘 밴드라는 것들은 곡에 기타 솔로도 없고 죽이는 리프도 없고....." 하는 걱정이 있는데 그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최근(까지 활동하는) 밴드. 내가 요즘에 밀고있는 노래 한 곡. Buckcherry - Rescue Me (2008) the cruellest month시간 2008/07/13 01:02![]() T.S. Elliot. 생각해보건데 요즘은 감정이 메마른 상태가 꽤나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냉소적인 분위기야 항상 있던 것이지만 특히나 최근에는 특별한 감정적 변동이 없었던 것 같다. 하기사 최근에 워낙 격분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다른 감정들이 비집고 들어 올 기회가 없었던 것도 원인이긴 하다. 그런데 점점 인간의 감정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최근 계속 도파민에 관한 논문들만 뒤적거려서 그런 것같기도 하고. 점점 인간이 감정으로 하는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가지 필요에 의한 일들을 감정과 상관없이 해야하기에 감정을 빼버리고 일을 하는 습관을 이곳에서 든 탓도 있다. 여간 밑바닥까지 말라버린 물탱크 바닥을 청소하는 느낌이 든다. 퀴퀴한 냄새와 불쾌함이 밀려온다. 날씨가 더워서 이러나? 사직.시간 2007/06/23 22:47![]() www.xlab.co.uk/.../ 그래. 나는 쓰고 쓰고 또 쓴다. 쉴새 없이 쓴다. 나는 생각을 그대로 글로 적는다. 나는 그렇기에 욕설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욕설을 글로 쓰면 '예쁘지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저 단순하게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들과 달라지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달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일까? 막상 나는 무언가를 좇고 있지만 나의 길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작은 티끌, 그것은 화씨지벽이 되지 못하는 나의 마음에 남은 것이라 말할까. 무언가를 확실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리뭉실. 희뿌연 앞길. 어디로 가야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나의 시작에 대한 회상을 하지만 확실하다고 믿는 기억조차도 왜곡된 것이 아닐까 두렵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솔직하지 못했던 내가 미웠던 걸까.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계속 속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깊이 생각하는 것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그저 생각하는 대로 표현하는 그런 단순한 인간에 불과함을 나는 알고 있다.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오도 없었다. 난 원래 남들은 생각하지 않는 그런 물건이었으니까. 그저 나의 답답함을 해소해 줄 만한 것이 필요했고 몰입의 대상이 필요했다. 그저 도피처가 필요했고 아름다운 상아빛으로 포장된 세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을 다치고 힘들게 했던걸까? 나는. 그래. 나는. 그래서 이젠 때려치려고 한다. 다. 모두. 순수하게 나 자신은 없었고 나도 없었다. 피상적인 공부. 아니 공부처럼 보이는 것들의 덩어리들. 깊은 깨달음은 없고 겉만을 바라본 피상적 지식의 찌끄러기들만을 갖고 있었던 것 뿐이니까. 이제 다시는 책을 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수학자도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철학자 역시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속물이 되어 삶을 살 것이다. 그래서 뭐할거냐 Life for what시간 2007/06/17 22:55![]()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진작에도 했던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참으로 까다로운 질문이다. 나는 인간임, 혹은 나의 존재하고 있음을 나의 공부에서 찾아왔던 것 같다. 진리를 찾는 것, 혹은 그 길에 오르는 것이 나의 존재성의 제 1 구성원소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이유는 오직 그것 뿐 이었으니까. 그런데 기존의 진리 탐구의 물리적 환경요건이 제거되면서 그것이 뒤틀려버리게 되었다. 과연 나의 존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원소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나는 나의 삶을 무엇으로 지탱해 나갈까 하는 문제를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육체를 버리는 것은 그런 면에서는 참으로 간단하고도 유일하며 명확한 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미래나 과거에도 연연할 필요없이 현재적인 자신의 결단만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므로. 즉, 현재의 자신의 존재성을 내가 지금 당장 존재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명확한 구도안에서 묻는 것이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의 그 결단들처럼.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의 선택을 마치고 답을 기입하려는 순간에 나는 시험지의 뒷면을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가공식품포장지 뒷면의 부작용 설명에 대한 글귀만큼이나 작은 글씨로 나의 삶의 제 2의 구성원소는 무엇이냐고 써 있었다. 제 2 구성원소라. 나는 여태까지 제 1 구성원소의 문제에만 매달려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옳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의 삶이 단 하나의 구성요소로'만'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 있다. 물론 나는 많은 측면에서 나의 삶이 순수한 진리탐구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삶이 그러한 결정 원소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과연 이 삶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앞으로 나의 삶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가장 전위적으로 마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생각해 두었고 여러번의 시도를 해왔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의 착오로 미수만으로 끝난 전례들이지만 말이다. 나는 솔직하게 내 삶에 다른 요소들이 섞여들고 있다는, 혹은 이미 섞여 있었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이 상황에 대해 몸서리치고 두려워하고 있다. 누가 나를 구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시정지시간 2007/05/22 15:06![]() 다들 잘 살고들 계실거라 믿고 운을 띄웁니다 그려. 한 달 반을 묵혔으니 다들 잊으셨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살아 있소이다! 군대라는 곳을 와서 말로만 듣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제식훈련, 사격훈련, 화생방 그리고 덤으로 소방학교라는 곳을 와서 구급법에 소방 용구 설치, 점검법 등 까지도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왠지 모르게 이른바 '다나까' 체가 몸에 익어버린 듯에서 얼마전 까지만 해도 웹상의 글들까지도 그렇게 쓰다가 뭔가 어색함을 발견하고 '급'수정 중이다. 말하자면 이젠 글쓰는 것 조차도 조금 사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여간 아무 일 없이 살아있다는 말을 하기는 좀 그렇다. 적어도 공부를 못하는 데에서 오는 압박감과 무료함을 딱히 달랠 곳이 없으니. 잡담도 하루 이틀이요 군것질도 한계가 있으니 본원의 우울함과 서글픔은 어찌 극복해야 할지. 이미 군대라는 곳을 와버렸으니 이젠 흉터를 보이지 않게 잘 감싸 놓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생각할 수 있겠지만 딱히 자기 합리화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http://www.londonstimes.us/toons/cartoons/tim_armydrill.jpg 원래 별거 없어!시간 2007/03/26 00:21![]() luminescencias.blogspot.com/ 내 어릴적의 우상 프린스! M.J. 보다 두 배는 좋아했었다! 텔레비전에서 (음악)비평 프로그램 보고 있었는데 또 울컥한다. 그런데 말이다. 난 어렸을 때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 엄마가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나 바이올린이나 뭐 하나라도 배우라고 그랬는데 끝까지 배우기를 거부했었다. 사촌들이 다 모이면 브라스 밴드지만 (트럼본, 트럼펫, 클라리넷, 비올라 등) 나는 클래식 악기라고는 슬라이드 기타를 치는 것이 전부인 정도? 게다가 악곡이 길면 절대 치지를 못한다. (바하 노인네의 클라비에 선곡집 뭐 이런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외운다) 화성학이라고는 배운 적이 없고 코드는 배우기보다는 만들어서 쓴다는게 사실이라고 말 할 정도로 무지하다. 코드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블루스를 듣는데 어느날 알 수 없는 스트로크가 나와서 이건 도대체 어떠게 해야 음이 나는거냐고 생각해서 배운 정도. 기타를 배운건 고등학교가 넘어와서부터. 그 전에는 흑인 음악에 빠져살았지만 사실상 랩과 블루스가 전부였다. 좋아하는 음악가는 존 리 후커(Johm Lee Hooker)와 서니보이 윌리암슨(Sonny boy wWlliamson)이었고 (거, goodmoring lil skoolgirl 만든) SRV, Prince 정도? 클래식이라면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해서 엄마가 이모들이랑 음악회같은데 가자고 하면 (이모들이나 사촌 누나들 말로는) 거의 쇼크 상태가 될 때까지 울어제껴서 도대체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른 음악이라고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본 엔카와 한국 옛날 노래들 정도. 생각해봐라. 10살 짜리가 대전 부르스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활보하는 모습을. 덕분에 난 음악을 배워야 할 공부로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덕분에 중학교 때 꿈은 영화 음악 감독(아니면 게임 프로듀서)이었고 (빔 벤더스의 그 음악적 센스를 정말 좋아했는데 말이다) 음악이란 건 가슴에서 나오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거의 기술자 취급하면서 싫어했다. 말하자면 이건 뭐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화음들을 조합해서 만드는걸 영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뭐 다들 비슷하지만) 곡을 쓸때는 펜보다는 드럼 머신과 기타를 쓰는 일이 99% 이상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냥 기타를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치고 놀고 있으면 좋은 음들과 리프들이 샘솟아서 음악을 만들어준다. 사실 내가 데뷰 앨범을 낸 프로 음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기량을 갖춘 재야 고수도 아닌 것 같지만 음악이란게 꼭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정확한 테크닉과 좋은 체력, 그리고 특출난 기억력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쇤베르크 할아범의 음계가 앨버트 킹의 음계보다 더 복잡하고 이론적인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얻는 감동이 적은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쉬운 R&B'란 말은 도대체 무엇이 쉽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R&B가 쉽다는 것인가 아니면 창법이 고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면 백킹에서 코드를 두 개밖에 안썼다고 하는 말인가? 세상에 쉽고 어려움에 의해서 음악이 좋고 나빠진다는 논리는 한번도 타당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물며 R&B처럼 태생이 악보 위에 있지 않은 음악들이야말로 그런 논리에 알맞은 예가 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음악이란 현대에 이르러서는 진보라는 낱말로 인간이 수식할 수 없는 분야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세상이 좋아져서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음악이란 것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듣고(音) 얼마나 즐거운가(樂)' 의 문제 아닌감? 아무리 대단한 음악이라도 듣고 즐겁지 아니하면 그건 음악이 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음악학(musicology) 의 알파며 오메가임에. Post Scriptura To be 'the' prefect one시간 2007/03/07 23:18노력이라. 가끔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습관적으로 학교에 나가서 수업을 듣는 내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습관도 나름이라지만 이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고 이른바 '마인드가 다른' 생활 습관이라고 말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스스로 더 비참해 보이고, 놀고 싶은 것도 없고, 놀 사람도 없는 비극적인 사태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들에는 바로 전의 포스트에서처럼 생긴 작업실을 하루 종일 어지르면서 말 안듣는 컴퓨터 및 전자 악기들과 씨름하고 있고, 오후에는 운동하고 와서 저녁 먹고 텔레비전 보는 둥 하다가 잠자리 맡에서 책을 좀 읽다가 잠자는 생활이 벌써 석달째다. 지겹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다. 여간, 여러가지 기분이 든다. 남들은 군대 가기 전에 술을 잔뜩들 마시고 간다고 하는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만 한달이 다 되어가도록 술을 마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마신거라곤 2월 중순에 학회 엠티 갔을때 살짝 과음한 것 정도. 마실 일도, 마실 사람도 없다. 전에는 공부 안되면 집에서 술마시고 문제 풀고 이랬는데 요즘에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조차도 없어 여행 다녀오면서 잔뜩 세관에서 사다놓은 양주들의 숙성이 절찬리에 진행중이다(-_-;). 사람들이 범재와 천재를 나누는 기준을 주로 IQ를 쓴다는데 과연 기원전에 태어난 희대의 철학가들도 IQ가 아주 높았을까 생각해본다. 천재를 만드는 기준은 시대가 지나며 변한다. 심지어는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도 동시대에서 다른 인물을 서로 천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능 만점 받은 아이를 천재라고 할 지 몰라도 아마도 서구에서는 사회탐구 따위의 것들 못해도 17살에 박사를 하는 녀석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난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한국식의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찍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쳐버렸고. 붕 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맞네, 붕 뜬거.) 과연 2년간의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성장이 될지가 걱정이다. 무엇이 나의 '柱'가 되어야 할까? 쓰잘데 없다니까시간 2007/03/02 00:31![]() 어릴 때(정확히는 중고교 시절)부터 친구들한테 많이 쓰던 표현 중의 하나가 '쓰잘데 없다'는 표현이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야 없겠지만 표현이 가진 뜻을 표현하자면 말하자면 쓸모없다는 말인데 (그 부언 참 쓰잘데 없다) 특히 수학 공부할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대수위상 같은 경우에 초반에 엄청 '쓰잘데 없어 보이는' 정리와 정의들을 많이 늘어놓는데 초반에 공부를 하면서 내가 공책에 '거 참, 이놈의 정의들 거 쓰잘데 없네. 도대체 이걸 지금 왜 하는거야?'라고 여백에 써놓은 것이 보인다. 결국 초반의 '쓰잘데 없는' 정의들이 그렇게 '쓰잘데 없는' 것 만은 아니었다는데 끝내는 밝혀지지만 어찌되었든 이런 용례가 '쓰잘데 없다'는 나의 이 문제의 표현의 주된 용도임을 알 수 있다. 음악 작업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이 (혹은 동생들이) 보내온 악보들을 보면서도 내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바로 이 표현. 주로 '뭔 놈의 꾸밈음들이 이래 쓰잘데 없이 많나? 다 없애고 vib.(vibrato)로 처리해.' 등등 사실 내 취향에 맞도록 바꾸라는 (아주 내 편향의) 지적이지만 뭐 그런 용도로 쓰인다. 그래서 그게 왜 쓰잘데 없느냐는 둥 실랑이도 상당히 자주 있는 편인데 여간 내 입장에서야 (아, 최근의 내 논문을 익히 읽어보신 지인들도 알 수 있으시겠지만) simple is the best 가 나의 모토임에 어쩔수 없는 바이다. 게다가 딱히 '쓰잘데 없다'는 표현을 대체할 만한 다른 짧고 강렬한 문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주욱 이 표현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쓰잘데 없이 이런 잡설들을 늘어놓고 있는건 바로 음악 작업의 성과물이 '아주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 사실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게 가고있다. 장비들이 도대체 집에서 제대로 먹히지가 않고 (컴퓨터 사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미디적인 작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리듬파트는 대강 되었지만, 솔로파트라든지, 보컬 백킹같은 작업들이 정말 끝도 없이 느려지고 있다. (그나마 이젠 마스터링은 아예 3월 내에는 해결하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정말 이렇게 집안에서 작업거리들과 실랑이 하는 것이 '쓰잘데 없음'을 느끼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역시 모든 건 돈 문제. 그냥 돈 천만원만 뚝 떨어졌으면 만사 오케인데 말이다) 하여간 최근에 잠도 제대로 오지가 않고 3월이 되니 이젠 정말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거니와 시간 임박이라는 현실과제가 눈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쓰잘데 없는' 말들을 지껄여본다. tags : simple is the best
옛날 옛적에시간 2007/02/24 21:46![]() 얼마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다. 술을 마시러 간 것은 아니고 신입생들한테 대학생활 경험담을 들려주라는 명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참석 제의는 학회의 현 회장인 김 모 양에게서부터의 전언이었고 상경대학 학장인 김 모 교수는 황송하게도 본인들을 '경제학부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들' 로 소개해 주셨다. 사람들 앞에 서보니 역시나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4년전이 생각난다. 내가 대학 초입에 처음 들어왔을때. 결국 1년 뒤 같은 땅을 한번 더 밟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 때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본다. 아직도 생각난다. 두툼하고 촌스러운 갈색 자켓에 어정어정 때묻은 포스1을 신고 푸석푸석한 준 장발을 하고 돌아다녔던 나. 상경대로 분반을 받은 이유는 친구들이 죄다 상경대로 몰려갔기에 같이 놀고자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던 선택 때문(덕분? 여간)이었다. 결국에는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공공연하게 '내가 대학 가면 이놈의 수학 하나 봐라'고 소리치던 대사가 무색하게도 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신입생들을 보고 있자니 고등학교 시절 처음 기타를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여리고 약한 왼손에서 피가 나고 살갗이 찢어지면서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단련해온 나의 왼손가락들. 지금은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기고 배겨서 살이 몇 겹이나 쌓여 바늘로 찔러도 아픈 줄도 모르지만, 어렸던(지금도 충분히 어리지만) 나에게 지금과 같은 날이 오리라고 그 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울고 화내고 몸부림 치면서 흘러간 시간들을 생각해보자니 주마등같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또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을 해야할 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여전히 막막하지만, 중요한 건 가슴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