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4/04 "기억상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
  2. 2006/04/04 "기억상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

"기억상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

손가락 2006/04/04 06:38
앞부분은 <"기억상실"에는 ...(1)> 을 참조하시길.

그렇다면 한국 영화(혹은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병을 이야기해보자. 한국 영화의 '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십중 팔구는 "기억상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드라마의 극적 전개에서 반드시 필요한 '영화적 장치'로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것이 '기억상실'이니 말이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천국의 계단',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내 머리속의 지우개' 등등 비교적 최근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영화(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이 등장했음을 상기할 수 있다. 그 외에 최근의 '병'을 다룬 영화들을 생각해 보자면 '말아톤', '너는 내 운명', '얼굴없는 미녀' 등을 들 수 있겠다. 우선 전통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한국영화(드라마) 속에서 나타나온 '한국인의 병'인 기억상실을 이야기해보자.

'기억'이란 (1)에서 말한 바 있듯이 인간의 통제 불가능한 대상이다. 이러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장 빈번하게 기억상실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인간'에 대한 기억상실이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른 연인을 바라보며 "누구세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어떠한 심리상황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와같은 순간적인 기억상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어떤 '관계'의 연계성이 일순간 끊어진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관계의 상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을 지탱해주고 있던 심리적 끈을 끊는 것(세계와의 유대성)을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인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한다. 그것은 곧, 한국에서의 개인이란 타인에 의해서 '기억'되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타인과의 연계성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는 이러한 경향은 조직적이며 의존적인 형태로 자신을 매몰시키고자하는 습성을 반영한다고 본다. 죽음 앞에서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겪어보지 못한 상태에 대한 두려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야기들 안에서 기억상실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나타날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형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자신이 타인에 의해 잊혀지는 상태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인다. 즉, 자신이 타인에 의해 잊혀진다는 상황을 주인공이 타인을 잊는 형태로 반전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을 자립적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얽힌 고리의 일부로서 생각하기에 그들은 타인과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겪게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인다. 첫째로는 '한국인'의 존재가 타인에 의해 매몰된 존재로 기억된가는것이다. 즉, 자신의 기억(과거)가 갖는 의미와는 관계없이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혹은 기존의 인간들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기존의 인간이 가지던 사회적 관계와 이로 인해서 잃게되는 면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 그것의 낙관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을 바라보려한다는 식으로 비하한 해석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치 인간이 기존의 기억을(관계를) 잊게되었다는 것으로 인해 그와의 사회적인 관계가 끊어진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그'와의 관계를 내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규정하려는 수동적인 인간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많은 한국영화(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기억상실로 그의 파트너(연인)가 "네가 나를 잊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어?"식의 반문과 함께 기억상실을 당한 당사자 본인이 그러한 타인의 낙심에 의해 더욱 괴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그러한 기억상실은 본인의 과실로 인한 결과라기 보다는 우연한 사고에 의한 결과물임이 뻔히 보이는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타인과의 관계정립에서의 생기는 개인의 문제를 타인이나 주위 환경보다는 본인의 의지나 본인의 잘못으로 규정하려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문제의 책임을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인 환경, 혹은 타인의 과실부분(왜, 하필 건널목 반대편에서 택시에서 내렸냐? - 이건 좀 웃긴가?, 아니면 왜 나보고 건널목을 건너오라고 했냐?) 보다는 본인의 문제로 전가하는 것이다.
2006/04/04 06:38 2006/04/04 06:38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기억상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

손가락 2006/04/04 06:37
기억이라.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억 상실증은 이제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해진 증후군으로서 더이상 증후군(syndrom)이 아니라 일시적인 상태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이 기억상실증은 이제 "진실한 사랑의 힘"으로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으니 한국의 민간요법은 서구의 의료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었음에 개가를 올릴만 하다고 생각한다. 어느날부터인가 이 기억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란 것에 집착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다들 지겹다고, 혹은 식상하다고 말하는 기억상실이 우리의 뇌리에서 되풀이 되어 일어나는 것에는 "기억상실"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억이 갖는 의미라. 먼저 기억이란 양면성을 지닌다. 즉,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울 수도 없고, 또 기억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즉,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뇌의 지각활동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비함과 놀라움을 자아낸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그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라는 의미를 갖게 해준다. 과거에는 이것의 원인이 자연현상이었으며 그들의 환경이었다. "지구상에서 세번째로 영리한"(이 대사는 영화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안내서"에서 발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통제불능이라는 것은 곧 공포의 대상을 의미하였다. 이는 모두가 국사책 상권에서부터 배웠듯이 애니미즘, 샤머니즘, 그리고 후대에는 통제불능한 것을 통제하는 유일신을 만들어놓고 그들을 숭배함으로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형태의 숭배는 서양에서부터 동양에까지 널리퍼져 있었다. 17세기 중반 이전까지 기상학의 미발달로 인해 가뭄, 냉해가 여전히 신의 분노로 인식되었던 것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1789년 이래로 시작된 혁명의 시대(에릭 홉스봄의 견해에 따르자면)에 인간의 지성은 여러번의 때를 벗고, 인간은 그들의 자연을 지배하던 신을 모살하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간다. 이후 익히 알려진대로 다윈은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공포하고 프로이트를 통해서는 그 중에서도 남자라는 동물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그리워하는 리비도 속에서 사는 심약한(?) 짐승임을 알게된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근 200여년 동안 서구의 지성계는 신의 숨구멍을 하나씩 막아가며 신을 교살 직전에 몰아넣는 데에 성공하였고, 이제 인간의 기억과 뇌는 최근 들어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인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 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물론 인지과학 내부에서도 그 방법상의 차이는 있지만(computation의 가능여부를 둔 분파의 발생 등)그 역시 인간의 손으로 연구되는 과학의 내부로 포용되기에 이르렀다. 즉 인간과 신의 완전한 분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확률적인 기억상실과 그에 또다시 확률적인 회복이 있을 수 있지만, 기껏해야 식물인간이다. 아니면 해리성 기억장애("메멘토" 같은 영화를 보라!)로 시작하여 병인의 치료는 꿈도 못꾼다. (뭐 "로렌조오일"같은 영화는 치료법을 발견하기도 하나) 우연한 질병은 주인공의 상태를 말하는 하나의 장치이고, 한국에서 처럼 멜로영화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화에 밥먹듯 등장하는 단골코드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병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많지 않은가. "필라델피아 Philadephia" (덴젤 워싱턴 출연)이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출연)"같은 경우는 에이즈, 위에서 이미 언급한 "메멘토 Memento"(가이 피어스 출연)는 해리성 기억장애, "제 8요일 The 8th day" (주인공이 기억이 -_-;;)에서는 다운증후군이다. 이외에 언급을 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줄줄이 많은 질병이 등장한다. 이러한 질병은 주인공의 상태를 단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표면적 장치로서 작용한다.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출연)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기면발작증(긴장하면 갑자기 잠이 드는 병) 등과 같이 하나의 질병(disease)가 아니라 주인공에게서만 나타나고, 그 치료법과 병인도 딱히 알 수 없는 하나의 증후군(Syndrom)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증후군들에서 주인공은 특수한 자신의 병적 상태를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전달방법을 갖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증후군을 치료하기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우선으로 한다. 대부분의 "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병"을 안고 있는 이를 하나의 병을 옮기는 "병자"로서 보기보다는 그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특수한 인간으로 보고, 이들이 세계와 조응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06/04/04 06:37 2006/04/04 06:37
tags :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