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이야기한 수학적 언어와 경제학적 관찰의 자의성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성격들을 규명하는 것은 일상적이며 평범한 많은 정리들로 채워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비자의 선호관계를 대수적인 관계(Relation)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성격들로 정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수학적인 언어의 기술의 한계가 나타나는 경우가 수학적인 형태로 기술 할 수 있는 부분의 것들과 비교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수학에서도 전체 함수공간에서 연속적인 함수공간이 불연속한 함수공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원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잘라내기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용이성과 편리성이다. 실재하는 모든것을 언어로 기술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언어실증론자들은 기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함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분석가능한 대상을 압축함으로서 언어로 기술할 수 있는 특징들만을 잡아낼 수 있고, 이로인한 학문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그런의미에서 경제학이 사회과학이라고 하는 면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있는 것같기도 하다)
'상관성'에 해당되는 글 2건
Neutrality?
손가락 2006/06/02 15:34말인 즉슨, 실수공간에서의 수열들의 행태와 실제 사회에서 인간들의 경제행위 사이에 근원적 공통성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이전에도 내가 글에 쓴바와 같이, 수체계 자체의 완전성을 수체계 내부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도 일견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즉, 수학체계 내부의 특질들은 실제 인간 세계의 본원적 특질들은 완전히 구현하기에 충분한가, 혹은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라고도, 맞다고도 말 할 수 없다. 분명 수학체계 외부에서 나타나는 실제 인간행태를 관찰한 경제학적 원칙을 수학적 형태로 기술한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고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수학적 기술과 경제학적 원칙사이의 관계 설정, 내가 흔히 coding 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의적이다. 그것은 수학적 체계내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형태로 '설정(정의)'되는 것이다. 즉, 언어적 의미로서 경제학적 관찰이 수학적인 '언어'에 의하여 기술되는 것은 일종의 언어적 자의성의 형태를 띤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수학적인 증명이 경제학의 연구와는 전혀 동떨어진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명사'와 '형용자'를 '조어'해 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갖는다. 수학적 '증명'은 언어의 새로운 행동양상, 혹은 표현가능 범위를 발견해 낸다(혹은 확장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그렇기때문에 분명 수학적인 재능 자체로 위대한 수학자들이 다수 있지만, 그들이 모두 노벨상을 쓸어가지는 못한다. 그들이 발견해 낸 수학적인 프론티어를 경제학적 관찰에 매칭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하는 '경제학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수학이란 경제학에 있어서 단순한 언어의 용도까지가 한계일 것인가가 내가 갖는 다음 질문의 요지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말할 수도 있을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실제로 존재성의 증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의 특질을 기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학적인 기술들은 경제학적 관찰의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은 특질들의 명확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