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철학대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2/01 반론의 가치
  2. 2008/01/26 大家

반론의 가치

Ceteris Paribus 2008/02/01 23:13
 오늘도 어김없이 관공서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지난 주에도 한 번 이야기 한적이 있는 철학자 대담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오늘은 소위 말하는 후기 여성주의 - 에...interviewee는 Post-Modern Feminism이라 하던데 난 Ante-Modern에 여성주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서 그냥 후기라고 하련다 - 철학자라고 하는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라는 양반이다. 개인적으로는 후기 구조주의나 해체주의하고는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담을 쌓은것을 공공연히 광고하고 다니는 마당에 이런 버럭 글을 쓰는 것도 썩 말끔해 보이도 않고, 또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을 뭐 얼마나 알고 이런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정확히는 수긍이) 가지 않는 구절들이 있어 글을 올린다. - 말하자면 이 글은 분야 전공자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질문용이랄까.

포스트 모던 페미니즘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결정된 성적 정체성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버틀러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sex) 조차도 사실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젠더·gender)처럼 반복적인 모방적 실행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성별과 젠더의 구분을 거부하고 이들을 모두 제도적 지배 담론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생각컨데 생물학적 성이나 젠더 모두 제도적 지배담론의 산물(즉, 인간의 사고에 의해 규정지어진 것)으로 본다면 생물학적 성이나 젠더를 따로 구분지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두가지를 구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말 자체가 문화적 구성 자체를 배제한 개념이 아닌가 싶다. Biological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Born-natural이란 말인데, 말 그대로 태어나면서 갖고 태어나는 것이므로 그것의 형성에 어떠한 외부적 개입(생물학적 요인 외에는)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문화적 형성 개념을 끌어다 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성이 문화적으로 형성된다고 한 것을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별이 갖는 다른 특징들 - 예를 들어 공격성의 차이라든가, 모성(혹은 부성) 본능의 차이라든가 하는 - 의 구별지음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사실상 젠더(사회적인 성역할의 구별지음)의 개념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 않은가 싶다. 인터뷰이가 질문을 좀 이상하게 던져서 이상한 해설이 나온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_-; 여간.

질문 - 당신의 이론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성별 범주는 그리 분명한 것이 아닌 것 같다.

曰 -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범주로 나누는 문화의 상징체계 안에서 만들어진 의미 부호라고 생각한다. 문화적 실천과 반복적인 흉내내기 행위의 과정 안에서 형성된 것으로, 성적인 범주는 우리의 선택과 실천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성별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협상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즉 생물학적 성에 따른 차이를 두는 것이 문화적 상징체계 안에서 만들어진 의미부호라고 하는데 위에서 지적한 부분에 대한 묘한 개념적인 뒤집힘이 있다. 생물학적인 것이 문화적 체계 내부에서의 의미부호라고한다. 여간 이문제는 위에서 이야기했으므로 넘어가고.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성별이 역사적 변화를 거쳤고 새로운 방식으로 협상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 특질이 사회 내부에서의 구성원 간의 합의로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마음만 먹으면 사회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한편으로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구성원간의 합의에 의해 내년부터는 남자가 아이를 낳는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질문 - 성정체성의 불안전성이라는 당신의 주장은 여성주의 이론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성별이 불확실한 것이라면 어떻게 여성주의 운동이 가능한가.

曰 - 성별이 인간 이해에 기본을 이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성별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주어지는가.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염색체인가, 호르몬인가, 아니면 해부학 혹은 다른 생리학적 특징들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성별과 젠더(사회적 성)라고 하는 것에는 ‘이름 붙이기’라는 강력한 실천적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바로 이 실천적 행위에 개입하여 미래의 젠더 용어들을 만드는 일이다
.

조금 말이 바뀐 듯 하다. 성별과 젠더의 이름붙임이라는 행위에 부여된 권력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특징에 의한 이름붙임은 젠더와는 구별되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싶다. 이름붙임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권력의 행사라면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이고 이에 대해서는 젠더라는 문제로 생물학적 성과의 구별지음을 이미 과거에 했기 때문이다.

워낙 짧은 인터뷰였고 워낙에나 구조가 복잡한 후기 구조주의의 한 갈래인 후기 여성주의인지라 전체적인 이론이나 개념의 설명이 부족한 인터뷰여서 와전으로 인한 (혹은 인터뷰이의 착오 등) 의미상의 오해가 다분할 것이라 보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뭔가 썩 명쾌하지 못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역시...오늘 신문은 괜히 봤어. 오늘부터 1펌프 타라고 하더니만......일진이 좋지 않아.

아, 원문은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700%20%20&Total_ID=3028512
2008/02/01 23:13 2008/02/0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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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家

Ceteris Paribus 2008/01/26 21:59

요즘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다. 관공서에 있다보니 여러종류의 신문을 볼 기회가 잦다. 대부분 하루 정도 지난 날짜의 신문임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도 인터넷보다는 종이 신문을 뒤적거리는 데에서 흥미를 느끼는 구세대(?)이다보니 저절로 종이 신문에 손이 가게된다.

여간, 각설하고, 중앙일보를 보는데 기획기사 하나가 눈에 띠었다. 2008 세계철학자대회 한국 개최를 맞이하여 동양 철학계의 석학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는 기획기사였다. 저번주에 본 것이 일본 불교를 전공하는 일본의 스에키 후미히코 교수라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용은 대체로 평이한 - 본인의 전공분야의 중점적인 화두를 소개하고, 동양 철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 편이었다. 뭔가 싶어서 중앙일보 기사를 검색해서 첫 인터뷰부터 읽어보았는데 탕이지에(湯一介) 라는 사람이 한 중국 철학에 대한 인터뷰였다.

인터뷰 내용은 요약하자면 중국 철학의 중점적 화두는 통합과 조화이고, 동양철학이 다양성의 시대를 맞아 서양철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서 부상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터뷰를 읽으면서 뒷부분 - 서양 철학의 대안으로서의 부상 - 를 읽으면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껴서 홧김에 장기적 블로그 연재물을 기획해 보았는데 개요는 동양 철학이 오늘날 과거의 압도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현대에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서양 철학과 비교한 동양 철학의 한계점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개선하지 않은 채로 대안으로서의 부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례를 대강 만들고 첫머리부터 시작을 해서 써 보았는데 쓰다보니 처음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양 철학이 같은 시대에 공존한 서양 철학에게 지배적인 위치를 내준 이유를 힘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철학 체계가 제공할 수 있는 세계 해석의 틀의 적합성 면에서 분과 학문으로의 발전을 가져온 서양 철학의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통한 발전 속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러한 서양 철학이 가진 장점은 오늘날의 산업사회가 갖는 특징과 일치하는 면을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즉, 분과 학문으로서의 발전은 각 분과들 사이의 이해나 소통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제 전공만 잘하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라 이것이다.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아야 할 필요 없이 서로 자신들의 전공을 연구하고, 통합이나 교류는 그러한 것을 맡는 또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분업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스템의 부분적 이해는 소위 말하는 '열개 요소의 합이 열보다 큰'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 사회가 실제로 그러한 면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요소들은 오늘날에 소위 말하는 '시너지'라는 이름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그러한 이름붙임 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면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렇기때문에 최근의 연구에서는 인지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분과의 학문들을 통합적으로 묶으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이다.

또 한번 각설하고 그런데 동양 철학(일단 여기서는 유교에 한정지어서 보자면) 은 서양 철학과는 사뭇 다른 시스템을 가진다. 즉, 연구자로 하여금 통합적인 세계의 이치 - 소위 말하는 도(道) - 에 대한 궁구를 통하여 세계의 분절적 요소를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홍범전(洪範傳)>같은 경우로 도의 이해를 통해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 한 경우라 하겠다. 조선시대 알성시 시험 문제 중 가장 '골때리는' 시험 문제로 유명했던 '천도책(天道策)' 이 또한 이러한 경우이다. 참고로 그 시험의 장원 급제는 오천원권 모델인 율곡선생. 즉, 천도를 이해함으로서 인간의 도덕적인 행동 규범을 논할 뿐만 아니라 자연현상의 양상과 원인을 규명해 내는 것을 관료 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굳이 현재 알고 있는 과학에서의 환원적인 설명과 같은지 다른지를 논하는 것은 논지에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이라면 연구자들 사이의 단절이 없이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는 것과 굳이 각각의 목적에 따라 다른 종류의 능력을 요구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도'의 이해능력에 따라 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좀 우습게 들리는 예일 지도 모르지만 삼국지 게임에서 보통 내정능력이 하나로 묶어 나오는 경우가 이러한 경우라고나 할까. 반면 단점이라면 연구자에게 전체적인 세계의 이치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만큼 높은 종합적 능력과 더불어 도덕적 판단 능력 (및 실천력) 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개별 분과적 능력에서의 탁월한 재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중국 및 한국의 중세 사회는 고질적 인재 부족에 시달렸고, 한편으로는 수량화할 수 없는 능력에 대한 판단이 사용자(?)에게 요구되므로 (도덕적 해이의 당연한 등장으로 인한 시그널링 문제가 생기므로) 인재 등용의 파행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구 철학에 기반한 학문 및 정치 체계의 문제점은 분절적 발달로 인한 학문의 기형적 성장 및 도덕적 판단 능력의 부재(와 한편으로는 폄하)인 것이다. 학문의 기형적 성장이라 함은 학문의 발달에 있어 수량화와 체계화가 주가 되고, thesis에 관한 논의가 부가 되어버린 상황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이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있어 기존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이루어지는 점진적인 변화를 겪지 않고 한 세대 내에서의 시대적 급이행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다른 산업 국가들 보다 이러한 구학문과 신학문 사이의 충돌을 더욱 빨리 겪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형적 성장이 그러한 분절화된 학문의 최대 장점으로 꼽혀왔던 설명력 및 예측력의 우위를 위협하게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지식인의 도덕적 판단 (및 실천) 능력을 그의 성과와는 별개로 취급하며, 특정 분야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요구할 뿐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배제하여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동양 철학이 추구한 통합적인 체제 구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탕 교수의 한 마디는 그 한 마디에 동양 철학에 대한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니 이야말로 나의 자만심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 할만 할 것이다. (왠지 <차마설>같은 풍의 글이 된 듯하다)

2008/01/26 21:59 2008/01/2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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