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alog boy of wasteland pt.2
손가락 2007/03/18 23:38
지난번에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도구가 인간의 다양성의 창발 속도를 초과하게 되면, 이른바 인간의 만세영원한 번영이 인간 자신에 의해 위협받게 될 것이며, 실제로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협박성 멘트로 마무리를 (어물쩡) 지었다. 기존의 인간들이 소위 문화의 다양성을 통하여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해왔으며 진보해 온 바, 현재 가속화되는 소위 정보화는 그러한 다양성의 발현 속도를 초과하는 일원화의 속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혹은 기반에 두고 있으며) 이는 곧 인간의 다양성이 잠식당하는 (실제로 낳고 있는 징후들을 보이고 있고)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러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탈출구를 인간 문명에서 발견할 수 있을것인가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문화적 다양성이 그러한 속도를 등에 업고 가속화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한국 언론에서 요란하게 다루는 이른바 UCC(user created contents)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엄청난 속도로 파급되는 개인 사용자에의해 만들어지는 각종 콘텐츠는 그러한 가능성에 일견 긍정적인 대답을 던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여러가지 한계점을 지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러한 콘텐츠 자체가 사용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에 의해 생성,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 목적에 의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 공급자에 의해 공급되는 한정된 도구를 통하여 생성, 전파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나 퀵타임 플레이어, 혹은 플레시 등이 없다면 그러한 콘텐츠는 생성, 전파될 가능성이 적어진다. 말하자면 자발적인 교환이나 소통보다는 공급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조작된 물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여기에서 도구는 만드는 사람보다는 쓰는 사람에 달렸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교과서적인 답변보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선택하는 편이 더 높은 가능성을 갖지않을까 하고 그에 무게를 실어본다.
그러한 도구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도 근본적인 한계성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콘텐츠들의 생성과 파급이 이미 소통가능한 하나의 문화적 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줄 사람이 없다는 식의 영상물을 만들어서 번역까지 해서 You Tube 같은 사이트에 올려서 엄청난 조회수를 올렸다고 해보자. 그러나 그 영상물을 보고 추천한 사람들은 (언어나 인종, 국적 따위와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발렌타인 데이'라는 동일한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엄청난 속도의 문화의 생성과 그것의 전파라고 할 지라도 일정한 문화권 내부에서만 가능하며,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 같은 정도의 그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양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것은 일부 문화권에 한정되며, 그러한 문화권의 범위 확산은 곧 문화적 일원화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기에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생성과 전파의 속도 증가를 통해 문화 일원화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의 일원화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게 바로 전형적인 21세기의 아포리즘이지.
그렇다면 이젠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